지우개, 실수도 깨끗하게 지워주는 작은 발명품의 위대한 역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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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필통 속에 넣어 다녔을, 그리고 지금도 책상 한켠에 자리 잡고 있을 지우개. 우리는 연필로 쓴 글씨를 아무렇지 않게 지워주는 이 작은 도구를 당연하게 여깁니다.
하지만 지우개에도 흥미로운 역사가 있다는 사실, 알고 계셨나요? 실수를 지우는 것을 넘어 인류의 학습과 기록 방식에 혁명을 가져온 지우개의 역사를 탐험해 봅니다.
잉크는 지워도 연필은 못 지우던 시대
지우개가 발명되기 전, 사람들은 필기 오류를 어떻게 수정했을까요?
잉크로 쓴 글씨는 칼로 종이를 긁어내거나, 젖은 천으로 문질러 흐리게 만들기도 했습니다.
하지만 연필이 보편화되면서 문제는 달라졌습니다.
연필은 흑연 가루가 종이에 묻어나 필기되는 방식이라, 칼로 긁어내면 종이가 손상되기 일쑤였죠.
그래서 당시에는 빵 부스러기나 밀랍 등을 사용해 연필 자국을 지우려 노력했습니다.
특히 촉촉하고 부드러운 빵 부스러기가 흑연 가루를 흡수하는 데 꽤 효과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애용했다고 합니다.
하지만 빵 부스러기는 금방 마르거나 부패하고, 사용 후 흔적을 남기는 등 여러 단점이 있었습니다.
고무, 뜻밖의 지우개로 발견되다
지우개 역사의 전환점은 18세기 중반에 찾아왔습니다.
1770년, 영국의 유명 화학자이자 성직자였던 **조셉 프리스틀리(Joseph Priestley)**는 식물 연구를 하던 중 고무(India rubber)가 연필 자국을 지우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합니다.
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"나는 연필 표시를 지우는 데 인도 고무 조각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"고 기록했습니다.
이 발견은 당시 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, 고무는 빠르게 '러버(rubber)'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. '문지르는 것'이라는 의미의 'rub'에서 유래한 이름이죠.
그러나 초기의 천연 고무는 날씨에 따라 끈적해지거나 딱딱하게 굳는 등 보관과 사용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.
현대 지우개의 탄생: 가황 고무의 등장
고무 지우개의 상업적 성공을 이끈 인물은 영국의 엔지니어 **에드워드 나이언(Edward Nairne)**입니다.
그 역시 1770년에 프리스틀리의 발견과 거의 동시에 고무가 연필 자국을 지우는 데 효과적임을 깨닫고, 고무 조각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.
그는 고무 한 큐브를 당시 기준으로는 비싼 3실링에 팔았다고 하니, 그 수요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.
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19세기 중반에 이뤄졌습니다.
바로 가황 고무의 발명입니다. 미국의 발명가 **찰스 굿이어(Charles Goodyear)**는 1839년 고무에 유황을 첨가하여 열처리하는 '가황(Vulcanization)' 공정을 개발했습니다.
이 기술 덕분에 고무는 온도 변화에 강하고, 탄성과 내구성이 뛰어난 현대적인 형태로 변모할 수 있었습니다.
가황 고무의 등장은 지우개의 대량 생산과 보급을 가능하게 했고, 지우개는 비로소 우리에게 친숙한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.
지우개의 진화: 종류와 기능의 다양화
시간이 흐르면서 지우개는 더욱 다양하게 발전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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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필 끝 지우개: 연필 뒷부분에 지우개를 달아 필기 중에도 쉽게 지울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는 1858년 미국 하이먼 립맨(Hymen Lipman)이 특허를 내면서 보편화되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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플라스틱 지우개: PVC(폴리염화비닐) 등의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지우개는 고무 지우개보다 지우는 능력이 뛰어나고, 종이 손상이 적으며, 지우개 가루가 덜 날린다는 장점 덕분에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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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양한 색상과 디자인: 이제 지우개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. 디자인과 색상이 다양해지면서 학습용품을 넘어 수집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.
작은 지우개 하나에도 이처럼 흥미로운 발견과 기술 발전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.
빵 부스러기에서 시작해 고무, 그리고 플라스틱으로 진화하며 우리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된 지우개.
다음에 지우개를 사용할 때, 그 작은 조각 안에 담긴 위대한 발명의 역사를 한 번쯤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?
